LDR008:
왜
우리를
그의
아들
안에서
만드셨는가?
지금 우리는 기원 후 1세기에, 죽고 부활하여
부활하신
능력의
모습을
한달 이상 보여주신
존재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는 신학자와
철학자들에
의해 가장 지혜롭고
도덕적인
인간으로
평가받아왔습니다. 그는 창조주의
아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언행을 보여주었으며, 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당신과 제가 그 분 안에서 창조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왜 창조주는
우리를
그의 독생자 안에서 창조하셨을까요? 기억하다시피
이 분의 부활은 믿을만한
역사적
사실이며
수천개의
문서로
뒷받침
되었기에, 이 분을 기준으로
우리는
역사를
기원후
기원전
이라고
분류할정도입니다. 그는 이 지구를 마지막 벗어날 때에 “나는 너희가 갈 곳을 준비하기
위해서
간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그의 말들을 통해서 우리의 창조주가
그의 독생자와
같이 되기를 바라며 우리를 그 안에서 창조하신
사랑의
존재임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우리를 독생자 안에서 만드신 이유는 우리가 그의 생명과 인격을 닮음으로
사랑받는
존재로
만들어지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창조주가
우리들을
장난감
로보트와
같은 존재가 아닌 자유의지가
있는 존재로 만들어서
그의 친구가 되어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하셨음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것은 곧 우리가 원한다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의지를 주셨음을
의미하며, '비존재'가운데 우리의 선택이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하더라도
그가 기꺼이 견디고 기다릴 것을 감수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우리를 그 독생자 안에서 만드셨기
때문에
가능한것입니다. 우리의 현존하는
삶은 사실 이 선택의 기로에서
독립적인
무(無)의 상태를 선택한 결과입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이 이기적이고
잔인하지만
때때로
선하고
착한 면을 소유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비존재' 로 인하여 잔인해진
존재인
동시에
예수님의
생명에서
오는 이 선한마음을
소유하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 선한것은
유일하게
“창조의
첫 아들”이라
칭함 받은 창조주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에
의해 지탱되고
있습니다. 그는 그 안에 우리의 독립적인
삶과 그에 따른 죄의 댓가를 다 감당하고
계십니다. 이 우주 가운데 가장 큰 책임을 감당하실
수 있는 그 분은 우리의 자유의지로
행하는
모든 결과를 감당하시고
계십니다.
영원에는 전과 후가 없지만, 쉽게 설명하기
위해 이런 표현을 써봅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가지신
몇만분의
일 초 후에 당신과 나를 독생자 안에서 창조함으로서
나중에
독생자를
우리 가운데 보내실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이것을 에베소서에서
는 “우리는 그의 만드신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그 아들안에서
우리를
통하여
이 창조 계획을 완성하고자하십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예수님의
생명을
거부하여
생겨난
안좋은
결과들을
인내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세상은 원래 목적된 삶의 모습이 아닌 임시적인
세상입니다: 창조주께서
직접 우리의 독립적인
결정에
따른 치명적인
결과들을
감당하심으로
우리의
삶을 지속시키고
계시고, 우리가 그의 생명을 받아들일
때 까지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현미경을
통해 우리를 관찰하시는
무정한
과학자의
모습으로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본성과
의지에
어긋나게
행동하는
우리들로
인해 스스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계시면서도
우리들을
그 독생자만큼
사랑하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어려움은
우리에게
생(生)과 무(無)를 결정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준 댓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