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DR013 : 계획된 삶

   만약 진실과 일상생활이 우리가 실제로 우리를 알고 우리를 사랑하는 이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확신 속에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미래에 관하여 생각하는 방식에 어떻게 영향을 끼칠까요우선 떠오르는 생각은 어떤 이유로 그리고, 어떤 목적으로 우리를 창조하여 이 땅에 있게 하셨는지 그 창조주는 틀림 없이 정확히 알고 계실거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가 우리로 하여금 잘 일어서서 문 쪽으로 걸어가 그 문을 열도록 연습시켜야만 하는 세밀한 계획과 관리 감독을 이해하기는 많은 이해력이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아주 단순한 행동을 할 수 있게 하는 데에도 여러분의 신체와 근육과 피와 두뇌 속의 무수한 작용들이 면밀하게 통합 조정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그러한 생각을, 지불해야 할 것과 받아야 할 것, 판매와 구입, 수입과 수출이 효율적으로 운영되도록 수없이 많은 사사로운 결정과 재무상의 결정을 시간마다 서로 충돌함이 없이 운영하는 전 세계 60억의 사람들에게 적용한다면 우리의 창조주께서는 매 순간 모든 것이 어디에 있고 또 어디에 있을 것인가를 정확히 알고 계신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창조주는 그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계획하였는지 확실히 알고 계십니다! 그가 완전한 전체를 창조하여 그것을 주사위처럼 굴리신다는 관념은 인간과 물리적 자연의 복잡한 활동과 조화되지 않는 관념이라고 아인슈타인은 완전히 거부한 것입니다. 과학자들에 의해 천지창조 이전의 혼돈설이 점점 진전되가는 것도 아무것도 우연히 발생하는 것은 없다고 하는 것과 동일한 믿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사실로 우연이라고 하는 것이 지배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운이 우주의 궁극적인 힘이 되어 이지적인 우주의 절대주권자는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운에 대한 대안은 사랑이 많으시고 능력이 무한하신 분이십니다. 그는 우리가 실제로 우리를 위한 그의 계획 안에서 우리가 묵묵히 따르는 쪽을 택할 수 있도록 억제력을 가지고 그의 완전한 주권을 사용하시고 또 그만큼 우리가 서투르게라도 그를 사랑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가 우리들의 해로운 처신의 긴장과 고통을 참고 견뎌야 할지라도 그러십니다. 이것은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닭이 병아리를 모으듯이 내가 얼마나 너희를 모으려 했느냐, 그러나 너희는 모이지 안 했구나.”하는 말에서 예수가 예루살렘에 대한 아버지의 태도를 표현했을 때 예수가 설명한 상황과 같아 보입니다. 그것을 또한 예수의 제자 중의 한 사람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고심하여 네 자신의 구원을 이루라. 그의 선하신 기쁨을 이루시려 너희 안에 역사하실 이는 하나님이시니라”라고 말할 때 그가 표현한 역설(paradox)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좀 깊은 뜻으로는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행하지만 그러나 실제 행동을 하는 것은 우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실은 우리들의 삶이 우리들을 위하여 계획되었고 그 계획은 수행하기 위하여 우리들의 창조주의 권능이 우리 안에 역사하시지만 이곳 지상에 있는 그의 아들 예수가 그의 대우에 순종하는 것은 그가 지배적 절대 권력자도 아니요 꼭두각시도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명백히 해주는 것입니다. 좀 역설적인 뜻에서는 그도 행하고 우리도 행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