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DR015 : 왜 하나님은 악을 허용하시는가?

  진실과 일상생활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획하신 삶을 그 자신의 아들이 여러분들을 통하여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그 아들 안에 여러분들을 창조하신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를 여러분들이 친히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아는 것을 수반하는 것입니다. 전날에 우리가 알았던 것은 우리가 그런 사고를 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 우리는 안정감을 얻을 만큼의 의식주 문제를 취하는 데에, 어떤 의미심장한 감정을 주는 타인들로부터의 존경과 인정을 얻는 데에, 그리고 삶을 견딜 수 있게 할 만큼 다소의 기쁨과 행복을 갖도록 환경과 일들을 정리하는 데에 완전히 열중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로 인하여 우리는 그 밖에 어디에 계신 어떤 창조주에게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단지 우리 주위의 현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평생 동안 유의하는 원천입니다.

   우리들의 창조주는 왜 이렇게 되도록 허용하시는가요? 자신의 본성이 사랑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유의지를 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실제로 그 자유의지를 그에게 되돌려 주는 데에도 자유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와 그의 사랑을 거부하거나 혹은 보답으로 그를 사랑할 자유를 우리들에게 주십니다. 이러한 것은 이 땅에 있는 그의 아들이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닭이 병아리를 모으듯이 내가 얼마나 너희를 모으려 했는가, 그러나 너희는 모이려 하지 아니하였느니라.”라고 말하였을 때 그가 표현한 뜻이었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님에게서 돌아서서 다른 신들에게 떨어져 있었던 수년 동안에 구약의 예언서에서 “주님의 확고부동한 사랑은 중단이 없다 ; 그의 자비는 끝나지 않는다.”라고 말을 한 이유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진귀한 꽃들이 그들에게 꽃가루를 옮겨주는 벌이나 나방을 가지도록 계획하시고, 대기의 기압은 폭발하는 일 없이 우리 인간이 존재하는 데에 정확히 알맞게 계획하시고 또 우리의 삶을 주의 깊게 세밀히 계획하셨지만 그는 여러분들이 표현하려는 모든 독자적인 이기심과 격함을 참고 견디십니다.

   그 결과는 이 세상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인 창조주가 없는 삶은 어떠한 것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사실적인 묘사인 것입니다. 생명나무를 먹는 것은 허락하고 선악과의 나무는 거부한 것이 창조의 기록인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듯이 이 현 세계는 우리들에게 명백히 삶과 죽음을 추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한 창조주의 계획을 묵묵히 따르느냐 아니면 거부하느냐 하는 기회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창조주에게서 떨어져서는 영원한 생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실 때 파괴적인 상황과 맞서십니다. 우리는 그의 자유를 누릴 때에 만이 그와 같은 성품이 될 수 있습니다. 그에게서 떨어져서는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그 자유를 그를 거부하는 데 사용한다면 생을 보존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에게서 떨어져서는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가 우리를 그의 아들 안에 창조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