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DR019 : 하니님의 작업

  우리가 지금까지 말해온 삶이란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하루 하루의 삶과 어떻게 다른 것일까요여러분들이 우리가 이 토의에서 말하고 있는 것의 지적인 근거에 관한 여러분의 기억을 되살리고자 한다면 첫날부터 엿새 날까지를 고찰하거나 읽어 보십시오 : 그것은 그리스도가 우리 모두를 그 안에 거하게 하는 존재라는 것을 아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면 여러분들은 바울이 왜 에베소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2:6)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은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말하였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그의 아들 안에 창조하셨음은 그 아들 자신이 언제나 생존해 있을 모든 인간의 자유의지로 인해 상처 받을 것을 예지하신 모든 모욕과 죄를 몸소 짊어지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막심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리를 시공간에서 들어 올려 그의 아들 안에서 영원세계에 재창조하셨습니다. 이 현 세계는 일시적이며 몰락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실제 영원세계는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욕구를 위하여 세상에 의존하는 듯이 산다면 우리는 그 한계를 겪을 것이지만 창조주의 아들의 삶에 의존하여 산다면 그 무제한을 겪어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들의 실제 선택은 세상에 의존하여 생긴 기형적 인간과 그리스도 안에서 재   창조된 원형적 인간 간의 문제입니다. 기형적이고, 변태스러운 옛자아는 지나가는 세상으로부터 노예적인 의존 상태에서 벗어날수없고 오로지 그리스도를 통하여 본래의 재 창조가 됩니다. 그리하여 믿음은 무엇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받아들여 현실적으로 다루는 것이거나 혹은 거부하여 비현실적으로 다루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들의 태도는 삶에 있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이견(異見) 속에서 살고 있는지 분명히 분별할 수 있는지요? 다음에는 여기에 관해 이야기 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