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DR023 : 화해
진실한 일상생활은 창조주의
아들로 하여금 아버지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나를 위해 계획하신
삶을 우리를 통해 살도록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 흠없는
진실과 우리를 위한 방편을
경멸하고 우리 안에 사시는
하나님을 생각지 않고 기회를
주어도 참고 견딜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들을 어쨌든
스스로 태어나고 어떤 눈에
보이는 의지에서 독립된
존재로 여기며 참되지 못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이건
사물이건 자기가 성공하는
데 필요한 것이면 무엇이나
이용하면서 제 일을 해 나가는
이기적인 기계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부자연스럽고
긴장된 세상이 된 것입니다.
마음에 내키지 않는
행복과 순전한 절망 사이에서
흔들리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처칠이나 루즈벨트나
바나도(Barnardo)나 혹은 테레사 수녀 같은
기묘한 사람들 속에서 작용하는
것 같은 어떤 능력의 특별한
선행에 의하여 구제되기는
하지만 수 세기동안 전쟁에
전쟁을 거듭하면서 큰 소리를
칩니다.
진정하신
창조주께서는 왜 이제까지
그런 혼란한 세상을 만드시고
또 그렇게 매듭을 풀어주는
사람들을 만드셨을까요?
실은 짐작하시겠지만
우리들의 창조주는 그가
창조한 세상을 아시고,
그의 독생자가 우리
각자의 마음 속에서 비길
데 없는 삶을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가 자진하여 기꺼이
원하느냐 하는 문제라고
하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의 독생자는 창조주
하나님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에게 순종하고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유입니다. 그것은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창조주는 우리에게 우리가
원한다면 그를 거부할 수
있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
안에서의 삶이냐 아니면
그가 없는 무가치한 삶 사이에서
실제 선택을 할 것입니다.
그가 우리가 무가치한
삶을 선택할 것을 알면 그는
그것을 그리고 그 모든 결과를
그 아들 안에서 참아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이
성경 에베소서 1장
4절에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들의 창조주는 그를
거부하는 가운데 그의 아들의
인간애로부터 떨어져 있는
고통을 온통 참고 기다리기로
결심하셨습니다. (하늘에서는 일 순간이지만
세상에서는 수 천년이라).
하나님은 자신의 본성의
일치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이 스스로 만든 자유의지의
결과를 자신의 마음으로
완전히 참음으로써 우리
자신의 파멸과 거듭남을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곳 시간
속에서는 우리들이 우리들의
원래의 배반성과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는 특성 사이에
선택을 하게 됩니다.
우리들의
창조주는 창조를 가지고
장난 칠 수가 없습니다.
그는 가식으로 사랑하는
체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가 본래 대로
있을 때 우리로 하여금 싫어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허락하십니다.
그는 자신의 아들 안에
우리를 창조하였을 때 증오를
파기하거나 혹은 그 증오가
변환될 때까지 참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오늘
날 전투에서 살해당한 마지막
사람의 공포와 고통을 마음속에
품기도 하며 동시에 살해
행위를 한 사람의 잔인성에
대한 고통을 마음속에 품기도
합니다. 그는 이 대립되는
두 가지 태도를 결합시킴으로써
여러분들의 본성을 개조하여
그 안에서 살 기회를 주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날 한 가지 진실이 있는
것은 창세 전부터 창조주께서
그의 아들 안에 창조한 한
가지 진실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여러분들이 주님을
거부하기도 하고 또 스스로
선택하기도 할 것을, 즉 하나님 아들 안의 영원
세계 안에서 파멸기도 하고
그 아들 안에서 거듭나기도
하는 일에서 하나님에 의하여
예견된 여러분들이라는
것입니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다른 분명한 선택은
과거의 회상으로 돌아가는
장면입니다 : 즉 하나님이
없는 것과 같은 삶입니다.
단지 현실은 여러분들이
그것을 선택하기를 기다린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