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DR027: 플래쉬백 (FLASH BACK) 인가 끊임없는 현재인가?
왜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옮은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쉽게 생각되는가? 왜 우리들의 자만심이 우리를 만드신 진정 중요한 다른 한 분에게 의존하기 보다 우리들 자신과 같은 필멸의 인간들로부터 인정을 얻는 데에 의존하는가? 왜 우리들의 눈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달갑게 여기는가 알기 위하여 그들의 눈길을 탐색하는가? 왜 우리들은 명사들이 아첨 받는 것을 볼 때 우리 자신에게 주의를 끌려고 자극을 받는가? 왜 우리들은 환경이 변해야 행복해 진다고 하는 허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보게 되는가? 왜 우리들은 우리들의 예금 잔액이 줄거나 집이 불에 타버릴 때 걱정하지 않을 수 없음을 깨닫는가? 우리들은 왜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혐오하는 표현을 할 때 그들에게 주먹을 휘두르는가? 그리고 왜 우리들은 이러한 태도를 고칠 수 없음을 보게 되는가?
우리들은 우리가 결정한 선택으로 말미암아, 곧 우리들의 소욕을 위하여 하나님의 피조물에 의존함으로써 조물주와 관계없이 살아가려고 하는 욕망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의 인간성이 타락해졌음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앞 절에서 제기된 의문점들의 해답이 되겠습니다. 여러 해 전에 학자들은 우리가 완전히 타락했음을 설명한 바 있습니다. 그들이 말한 뜻은 우리들의 전 인류와 인간성이 우리들의 생활 양식으로 말미암아 타락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한 분 이외에는 생명없는 죽음만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자치권이라든지 혹은 독자성 즉, “I”(나)가 한 가운데에 있는 sin(죄)이라고 하는 것을 택할 때에 우리는 우리 인간성의 본질을 통하여 모든 죽음의 파멸을 겪는 것입니다. 그것은 매사에 영향을 끼쳐서 우리의 인간성과 삶의 모든 부분을 망칩니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면 우리는 의례히 물에 빠진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우리는 자신을 소용돌이 속으로 삼켜버리는 이기주의 때문에 곤란받고 있는 데에서 헤어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이제 바로 그들 자신의 자주적 활동성으로 말미암아 타락하고 부패하였으며 어지럽게 비틀어져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들의 마음도 우리들의 감정이 착란 상태이고 우리들의 의지가 약화되어 있듯이 손상되어 있게 됩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뜻하는 바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되나니 그것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아니라 할 수도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계속 분투 노력하나 그것은 뿌리 깊게도 독자적입니다. 그렇게 우리들은 “입문서”를 쓰고 우리들 자신의 자신만만한 사고력에 빠집니다. 우리들은 “예수라면 어떻게 하실건가? 하고 물으면서 창조주의 아들을 감동적인 본보기로 이용하려고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우리들의 “그 분투 노력은 쓸모 없는 것”이 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 자신의 존재를 거부하는 모든 것에 대하여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시는 사형선고를 받고 있음으로, 더욱 자기 중심 속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우리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하나님의 본질이 아니고 하나님 그 자체입니다. 우리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원칙이 아니라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기독교적 사상이 아니라 그리스도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자유 의지를 부여한 뒤에 따라오는 모든 결과를 우선 참고 견디신다면 우리를 하나님 자신의 아들 그리스도로 바꾸어 놓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만약 우리에게 하나님을 파기할 기회를 주신다면 자신이 우리들에게 거부당해야 합니다. 이것은 시간을 초월하고 공간을 초월한 영원 세계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 영원 세계에서는 그리스도가 창세 전부터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창세 전 영원 세계에서 우리들의 전지전능하신 조물주께서 우리가 우리의 자유의지를 가지고 무슨 일을 할 지 예견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우리 자신의 존재의 영원한 근원에서 벗어나려 할 것을 예견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그의 독생자 안에서 창조되었음으로 우리 각자 안에서 스스로 그 고통을 겪기로 결심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옛 사람은 더 이상 죄에 (자기중심주의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느니라”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여러분들이 지향하는 그릇된 이기주의는 우리들이 선택을 하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마음 속에 담고 계신 우주섭리에 따른 죽음 속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입니다. 그 선택은 하나님에게 의존하는 진리냐 아니면 사물과 사람과 환경에 의존하는 비진리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들의 선택은 이승에서의 생사를 계속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조물주 자신이 각자 우리들 속에 넣어준 그의 독생자 속에 그의 전 생명을 낳아주셨지만 실제로 하나님 없는 삶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플래쉬백(회상을 위한 장면전환)인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 모든 죄를 직접 참고 견디셨기 때문에 영원 속에서 이루어졌던 일을 때가 되면 시현하실 수가 있습니다. 즉, 우리들의 타락한 인격을 파기하고 자신의 독생자의 인격으로 바꾸어 놓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와 그의 아들의 교환 만이 우리가 타락한 삶에서 구제될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를 개조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전반적인 개장, 완전한 개조입니다. 우리는 그 일을 우리 자신의 마음을 영리하게 써서 성취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자신의 마음은 하나님에 대한 적의입니다. 단지 우리들의 희망이 될 일은 “그리스도 예수는 어떤 한 가지가 꼭 부둥켜 쥐어진 것처럼 하나님과 동등된 것으로 생각하지 아니하였고, 자신의 마음을 비웠고, 종의 모습을 취하였고, 인간을 닮음으로 태어났고, 인간의 모습으로 자신을 낮추었고, 죽음에 그것도 십자가의 죽음에 복종하였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들 자신에게 얽혀 있는 철조망에서 구제 받는 일은 단지 하나님 자신에 의하여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우리가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원해 하나님의 독생자 안에서 조성되었듯이 우리들의 모든 것은 그 안에서 이미 파기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그 마음을 우리 안에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우리가 우리들 자신을 포기하고 그리스도 예수를 참된 생명의 주인으로 받아 들인다면 그 때에는 이 타락한 인간성이 성스러운 본성으로 바뀔 수가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