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DR032: 만족한 삶
진실 속에서의 일상 생활은 현실 세계가 이미 지나가버린 것이라고 하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조물주의 위대하신 지력은 여러분들과 나와 그리고 수 없이 많은 절제한다고 하는 사람들과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자유 의지를 가지고 행한 모든 일을 이미 다 보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곳 세상에서 가지고 있는 것은 우리가 그와는 관계없이 만들어 낸 플래시 백(세상을 되돌아 보기 위한 순간적 전환의 반복)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시간을 초월하고 공간을 초월한 영원 세계와 그 영원 세계를 소유하고 있는 우리 속에서 그 모든 것을 파기 하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이제 그와 함께 존재합니다. 그것이 진실이고 그 진실 속의 삶은 오늘 날 우리들의 특전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그것은 그의 독생자의 영이 우리 안에서 하나님이 계획하신 삶을 살도록 하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행하고 이렇게 사는 존재가 되면 우리는 진실을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그 진실의 체험은 직장과 가정에서 우리들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그 두 곳에서 우리들은 대다수 사람들이 자아의 세계를 구축하고 우리 생각대로 살아가며 당연한 아양과 칭찬을 받기 위하여 살아갑니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가족이 우리를 제대로 존경해주고 듣기 좋은 말을 해 주기를 강조합니다. 또는 직장에서는 우리들에게 적절히 마음을 써 주면서 동시에 복종을 관련시킵니다. 우리들은 매사를 우리들의 관점에서 보는 데에 익숙하여 당연히 우리가 원하는 식으로 일들이 되어지게 할 권리가 우리들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계획과 소망이 수반되도록 하기 위하여 타인들을 쫓아내지 않으면 불편해 진다고 생각합니다.
진실 속의 삶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우리들의 창조주는 그가 그의 독생자 나사렛 예수 안에서 거했을 때 아주 다른 길로 행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 안에서 동일한 길을 실행하십니다. 우리가 그로 하여금 그렇게 하시도록 받아 들일 때 우리 자신이 새로운 진실 속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부터 기적적으로 구원해 줄 하나님의 능력을 내려달라고 간구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반대로 아버지 하나님이 그에게 허락하신 고민스러운 죽음에 복종하였습니다. 그는 참된 왕이였고 로마인들과 유대인들이 그의 모든 뛰어나심을 인정하고 복종함을 받을만 했는데도 그는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갔으며 무리들이 그에게 베풀기를 원했던 찬양을 거절하셨습니다. 그는 우리들의 창조주 그의 아버지 하나님과 동등한 태도였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들의 자주권과 이기주의로 인해 우리 모두를 파멸시킬 권세를 다 가지셨지만 그러지 않으시고 우리 인간들이 그에게 주는 모욕과 적의와 증오를 그의 아들 안에서 감내 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창조주 하나님의 힘입니다. 그는 우리 인간들이 그에게 가하는 모든 학대를 감내하시면서 동시에 자비와 온유와 사랑으로 응답하십니다. 우리 안에서 우리들의 적까지도 사랑하시며 우리를 저주하는 사람들을 축복하십니다. 그렇게 하시는 단순한 이유는 그가 최후의 진실이며 그가 우리들의 모든 교만과 과시 속에서 우리보다 오래 사시기 때문입니다. 그의 생명은 항상 우리들이 십자가에 못 박음보다 오래 계속 됩니다. 그의 약함은 단지 그가 진실이기 때문에 우리들의 힘을 압도합니다. 그의 약함은 그의 권능의 범위 밖에 있는 무가치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그것은 이 세상에서의 우리들의 삶 속에 있습니다. 적의와 증오와 분노는 살인이나 전쟁에서처럼 순간적으로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 지 모르지만 그의 온유와 복종의 생은 홀로 계속되어 어떤 모든 것 보다 오래 계속됩니다.
흔히 이러한 온유와 자비의 삶과 우리 자신보다 남을 더 사랑하는 삶은 결과를 낳지 못한다고 해서 비실제적이라고 비판 받아 왔습니다. 보통 우리들은 이러한 이유로 그런 삶에 저항합니다. 즉, 그것은 아주 비실제적이고 악을 제거하고 선을 확립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시간의 틀은 너무 짧습니다. 우리들의 바라보는 눈은 근시안입니다. 우리들의 시간의 표준은 너무 편협하고 지역적입니다. 이러한 삶의 이치는 이것이 진실이라고 단순하게 해답할 수 없는 그런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조물주다운 것입니다. 이것이 그의 성품이며 이것이 영속적인 것이며 결국 우주 전역을 통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의 삶이 그의 독생자에 의하여 우리 안에 거함을 받아들인다면 우리 자신이 매일 같이 진실 속에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