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54: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정리해주신 상태로 어떻게 이르는가?

by Ernest O'Ne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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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현세에서의 우리들의 삶의 출발에 관하여 이야기해왔습니다. 지금까지 자기의 삶과 죽음을 통하여 자기가 진정 창조주 하나님의 독생자임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증거한 비길 데 없이 유일한 분의 설명을 활용하여, 우리들은 여러분들이나 내가 이 세상을 그의 삶으로 충만케 하기 위하여 창조주의 독생자의 지체로 창조되었음을 말해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만약 무가치한 것을 우리가 안다면 우리가 채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는 단지 주님을 알고 이해하는 일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그의 사랑과 그리고 우리가 그 안에 존재하는 그의 독생자를 거부할 수 있게 하셨고 하나님으로부터 그의 독생자가 떨어져나가는 별거의 고통을 견디시고 여러분들과 나를 특이하게도 영원으로 통하는 1000분의 1초 동안에 다시 창조하셨습니다. 여러분들과 나는 이 제 2의 기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독특한 누전과 우리 각자에게 특유하게 일어난 타락을 아십니다. 우리들은 우리 인간이 사랑의 하나님에게 복종하기를 받아들이는 그런 삶을 수용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좀 하찮은 존재라고 느껴지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존재 조차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에 여러분들이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답은 사람들에게 여러분들이 얼마나 중요하고 독특한 존재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거드름을 피우며 뻐깁니다.” 여러분들은 잘 할 수 있는 일에 관해서 자랑을 하거나 어떤 사람이 정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을 합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부모나 선생이나 사장이라면 여러분들은 어떤 일이 실제는 필요하지 않은데 일정한 방식과 일정한 시간에 행해져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사건을 일으키거나 논쟁을 일으킵니다. 이상한 것은 이러한 일이 종종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여러분들을 더욱 모르는 체하게 하여 여러분들은 그 사건이 계속되는 동안에 한하여 대수로운 존재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의 판단은 여러분들의 자만이나 오만한 태도가 무익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할 만큼 손상 받게 되어서 그 자만이나 오만한 태도가 심해져 마침내는 여러분들에게 제2의 천성이 됩니다. 그러한 한 가지 인상을 준다는 선입견은 여러분들과 똑같이 생긴 창조주 하나님의 독생자의 특유한 표현처럼 여러분들의 소중한 본성을 타락시킵니다. 여러분들은 창조주 하나님의 눈길이 항상 여러분들을 향하고 있다는 편안한 신임이 증대되는 대신에 인간의 눈길을 끄는 데에 열중하게 되어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에서 벗어나게 됨을 견디지 못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의 자만이나 질투를 깨닫게 될 때에도 그걸 중단하지 못하는 것은 여러분들의 눈이 두뇌와 관련하여 또는 두뇌가 의미심장한 관념과 관련하여 별로 누전이 개발되지 못한 까닭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누전은 더욱 깊이 무저항 속으로 침몰하는 여러분들의 의지를 우회하여 피해갑니다.

어떤 자조적인 서적이나 심리학은 여러분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창조되었음에 여러분들 안에 붙박이로 만들어진 기본적인 욕구를 다룰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한 서적이나 학문은 단지 임시변통의 도움을 줄 뿐입니다. 여러분들은 큰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욥이 말했듯이 “자기 손으로 독생자 안에 만드신 인간을 간절히 고대하고 기다리신다”고 하는 창조주 하나님의 애정 어린 평가가 바로 그 큰 사랑입니다. 여러분들이 창조된 원래의 진실로 들어가는 유일한 길을 예수에 관한 이 모든 일이 진실인가 신화인가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소급하여 지난 4번 원고에서 기술된 역사적 사실을 총명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고찰함으로써 쉽게 해결될 수 있습니다. 더 중요한 단계는 여러분들이 기꺼이 창조주 하나님의 독생자의 지체가 되겠는지 결정하는 일입니다. 왜 그러지 않을까요? 이 사람, 이 예수 그리스도, 우리들의 창조주 하나님의 이 아들이 자기 아버지 하나님처럼 자기 생각대로 죽으셨으니 왜 우리들이 그러지 않을까요 ? 독생자 예수는 존재해야 했고, 여러분들과 나와 히틀러와 같은 사람을 만드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동의해야 했고 그가 사랑한다고 말한 아들 안에 우리를 창조하심에 동의해야 했습니다. 더욱이 창조주 하나님 자신이 그가 창조하신 무수한 인간들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하게 되었을 때에 자신의 소원대로는 했지만 오히려 답답했습니다. 그것은 인간들이 하나님의 창조물과 그 독생자를 파멸시키기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수 있고 또 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창조주 하나님처럼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들에게 행하거나 생각하는 것과는 기꺼이 개의치 않을 것인가를 고려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기꺼이 무시 당하겠습니까 ? 여러분들 보다 이지적이지 못하고 깨달음도 없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무시 당하겠습니까 ? 여러분들은 기꺼이 과소평가를 받겠습니까 ? 부당하게 비난을 받겠습니까 ? 중상모략을 받겠습니까 ? 명예손상을 받겠습니까 ? 예루살렘의 그 예수라는 사람처럼 기꺼이 침 뱉음을 당하겠습니까 ? 여러분들은 그와 여러분이 경멸 당하고 품위가 떨어져도 기꺼이 그 안에 거하겠습니까 ? 하나님은 참을 수 없는 일을 참음으로써 세상과 그를 화해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정을 참고 견딤으로써 자신과 반역심을 품은 대중 사이에 융화를 가져왔습니다. 여러분들은 기꺼이 그러한 조화가 여러분들 자신의 교만하고 독자적인 본성을 대체하게 하겠습니까 ?

그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를 정리하여 주신 위치에 이르는 데에 인간이 해야 할 본분인 것입니다. 진실로 그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정리해주신 위치에 순응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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